북한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한지도 이제 30년이 되었다. 1985년부터 북한관련 강의를 시작했고, 이 분야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한 것이 1986년이니 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나름 북한정치의 연구에 정진해왔고 몇 권의 저서와 수십 편의 논문들도 내놓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학문에 기여했는가는 의문이다. 그러나 1998년 처음 선보인 이래 2006년 제4판까지 출간된 ?북한정치사회의 이해?는 아직도 애정이 가는 저작물이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추도대회가 끝나자 바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열어 김정은을 ‘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하였다. 김정은은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승계기간이 짧아 후계구도가 완전하게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김정은 시기의 정치과정에는 지속과 격변이 연속되고 있다. 김정은은 새로운 통치이념을 제시하고 강압과 유연의 통치행태를 보이면서, 주요 정책으로 ‘핵무력과 경제건설 병진노선’을 내세우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에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도 단행하였다.
이 책은 김정은 시대 북한정치 패러다임에 관한 연구로 크게 5개 분야로 나누어 서술한다. 정치체제와 정치문화 그리고 구조, 통치이데올로기의 지속과 변화, 정치권력의 승계와 김정은 유일영도체계 확립의 정치과정, 계획경제와 시장화 문제, 핵외교와 핵개발을 중심으로 논의하였다. 이렇게 5개의 편으로 구성한 내용은 다시 각 편마다 3∼4개의 장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제1편은 정치체계와 정치구조이다. 북한은 스스로 자신의 정치체제를 사회주의라 하고 있다. 여기에서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정치방식을 주장하면서, 이것이 인민에 의한 인민중심의 ‘위민정치’라 하고 있다. 그러나 인민중심의 정치를 위해서는 수령의 영도가 필연적이고, 결국 수령에 의한 정치로 귀결시키고 있다. 사회주의에서 내세우는 가치관은 집단주의로 대표적인 표현이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이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다원주의를 끌어 들이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조장되어 사회의 공동이익을 침해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북한에는 수령 절대의 유일영도 정치문화가 형성되어, 인민들은 충성과 복종자로 전락되어 있다.
북한은 당․국가 체계를 견지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조선로동당의 영도 밑에 모든 활동을 진행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김정일 시대 북한정치는 당보다는 군부에 힘을 실으면서, 선군정치를 사회주의의 가장 위력한 정치방식이라 하였다. 2009년 헌법 개정은 이를 완성한 것이고,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를 통해 당규약을 개정하고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화하였다. 김정일 사후에는 제4차 당대표자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한 헌법 개정으로 로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오르면서 김정은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여기에서는 헌법의 개정에 따라 권력구조가 어떻게 변화하면서 정치가 작동되었고, 당대회와 대표자회의 개최가 북한 정치과정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여왔는가를 살펴본다. 더불어 북한의 정치구조에서 반드시 규명되어야 할 것이 군대이기 때문에 이 문제도 다루었다.
제2편은 주체사상과 선군사상 그리고 김일성-김정일주의이다. 북한에서 통치이데올로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은 김일성이 창시하였고, 김정일이 체계화했다고 한다. 주체사상은 ‘사람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이라고, 헌법이나 당규약에 명시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과도기에 주체사상의 차별성과 우월성을 부각시키면서, 우리식 사회주의와 붉은기 사상을 내세우기도 하였다. 김정일 시대에는 ‘강성대국건설’을 주창하면서 그 기둥이 총대중시라 하여 선군정치의 정당성을 확보해 나갔다. 선군정치를 바탕으로 하는 선군사상은 총대에 의해 개척되고, 혁명발전에서 총대의 역할을 가장 과학적으로 분석한 사상이라 하고 있다. 선군사상은 주체사상의 계속이며 더 높은 단계라고까지 주장하면서, 김정일 시대의 통치이데올로기가 되었다.
김정은 체제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것이 김일성-김정일주의이다.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선군사상은 백두혈통으로 이어져, 김정은의 새로운 통치이념인 ‘김일성-김정일주의’를 탄생시켰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혁명사상과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발전시켰고 이를 선군사상으로 정립한 것과 같이, 김정은이 이것을 합법칙적으로 체계화한 것이 바로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독창성과 정당성이 있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제기함으로써 사회를 새로운 역사적 단계로 올려놓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주의의 구현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김정일애국주의라 하는데, 이는 통치이데올로기화를 위한 실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제3편은 권력승계의 정치과정과 김정은 체제 구축이다. 북한은 군주국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정치권력이 김일성으로부터 김정일로 넘어왔고, 다시 김정은으로 이어 지면서 혈통요인에 따른 세습적 승계가 이루어졌다. 2009년에는 내부적으로 김정은을 후계자로 결정하면서, 헌법과 당규약을 개정하여 완전한 김정일 체제로 전환하였다. 즉, 김정일은 ‘최고영도자’인 국방위원장과 당의 최고수반 ‘총비서’에 추대되어 김정일 시대를 열면서, 자신의 아들 김정은에게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부여하였다. 김정은에게 최초로 공식적인 직위가 주어졌고, 이것은 후계자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김정일이 사망하자 바로 ‘김정은 영도체계’를 선언하였다. 김일성 사망 후 그를 ‘영원한 주석’으로 모셨던 것처럼,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와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치켜세웠다. 북한은 제도화 과정을 거쳐 김정은을 당․정․군의 최고지도자로 추대하였고, 그의 유일중심․유일영도를 주창하였다. 김정은은 이러한 과정에서 정치엘리트를 재배치하고,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숙청내지는 제거해 나갔다. 북한 전역에 김정은 유일영도체계의 확립을 위하여 내걸린 구호는 ‘일심단결, 결사옹위’이다.
제4편은 계획경제와 시장화이다. 사회주의국가들이 1960년대 이후 시장기능을 부분적으로 도입하여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로 변화해 갔으나, 북한의 경우 중앙집중식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계속 유지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 북한 배급기능의 악화는 당국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식량을 구하러 농민시장을 찾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김일성 사망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라 불렸던 1994년부터 1998년까지는 국가능력의 부재로 시장은 인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었다. 김정일 체제가 변화하고 있던 경제현상을 현실적으로 수용하고 발전을 꾀하려 했던 것이 2002년의 ‘7.1경제관리개선조치’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당국이 종합시장을 허용하면서, 시장이 공식화되고 그 기능은 더욱 확대되었다. 당국이 생각한 시장은 ‘관리가능한 시장’으로 언제라도 이를 철폐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착오였다.
북한의 시장화 현상은 공식과 비공식, 불법과 합법이 얽혀져 확산되어 졌다. 2009년 11월 30일 전격적으로 단행한 화폐개혁은 화폐의 국가 환수와 시장폐쇄를 목적으로 하였지만 엄청난 부작용이 나타났다. 당국은 시장을 철폐할 수 없었고, 다시 시장은 주민들의 삶터가 되었다. 김정은 체제에서는 시장과 어쩔 수 없이 동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였다. 북한의 공식경제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시장을 중심으로 한 비공식경제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당국의 시장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정은 체제의 입장에서 보면 해외자금이 아닌 국내 자금의 동원력이 어느 정도 커진 것은, 정권의 안정성을 가져갈 수 있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시장화에서 발생하는 주민들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의 팽배는 김정은이 풀어야할 중요한 숙제이다.
제5편은 핵정책과 핵무력이다. 북한이 1960년 초반에 소련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하였고, 핵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1980년대였다. 여기에서부터 북한의 핵개발과 핵외교의 줄타기가 시작되었다. 김일성의 입장에서 핵문제는 백년 숙적이었던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고 체제보장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수단이었다. 김일성의 핵외교 노선은 김정일이 이어받아 미국과의 고위급회담을 마무리 지었는데 이것이 ‘북미제네바합의’였다. 그러나 이후 제네바 합의체제는 끝이 나고 미국의 의지대로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가 참여하는 6자회담으로 귀결되었다. 제6자회담이 지속되고 제4차 6자회담에서 ‘9.19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 이를 이행하기 위한 ‘2.13조치’와 ‘10.3합의’는 북한 핵신고서의 검증문제로 이행되지 못하였다.
김정일은 새로운 오바마 행정부에 기대를 걸었으나, 미국이 ‘전략적 인내’로 일관하자 제2차 핵실험으로 맞섰다. 김정일 사망 후에 김정은은 핵문제에 집착을 보이면서, 2012년 4월 자신 체제의 새로운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하였다. 2013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단행하였고 ‘다종화된 우리 억제력의 우수한 성능’이라며 성공을 자축했는데, 이는 기존의 플루토늄이 아닌 다른 종류(농축우라늄)의 사용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김정은은 자신의 정책으로 ‘핵무력과 경제건설병진 노선’을 천명하고, 소위 ‘4.1핵보위법령’을 제정하였다. 북한은 핵개발에 힘을 썼고 2016년 1월 6일 ‘수폭 실험’이라고 주장하는 제4차 핵실험을 하였다.
2010년에 들어서면서 김정일 시대의 북한정치와 후계구도 문제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2011년 11월말 ‘김정일 시대 북한정치연구’를 완성하여 출판사에 넘겼는데, 12월 19일에 북한 당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서거’라는 소식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잠시 출간을 미루고 다시 내용을 보강하는 작업에 들어가, 내놓은 것이 ?북한정치와 김정은?이었다. 책이 나온 후부터 바로 개정․증보판을 내야겠다는 생각하고 ‘김정은 연구’에 전념해왔다. 그리고 이를 실천에 옮기려 했으나, 여기에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기존 내용의 일부를 살리되 4년 동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김정은 정치의 프레임?을 출간하게 되었다. 김정은 시대를 본격적으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여기에 맞춰 김정은의 정치를 조망하고 분석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북한은 우리가 ‘강 건너 불구경’해야 할 대상이 아니고, 바로 알아야 할 애증의 결합체이다. 북한에서 정치는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분을 규율하고 통합한다. 김정은 시대 북한정치의 작동기제를 ‘체제․이념․승계․시장․핵’으로 본 것은, 이것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변화와 지속을 분석할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김정은 유일영도체계의 완성은 진행 중에 있고, 그의 결사옹위는 온 사회의 화두이다. 이제 김정은은 제7차 당대회를 열어 자신의 영도력을 확실하게 보여주려 할 것이다.
제1편 정치체제와 정치구조
제1장 정치체제와 정치문화
제2장 헌법의 변화와 정치과정
제3장 로동당의 형성과 변화
제4장 군의 조직과 위상
제2편 주체사상과 선군사상, 김일성·김정일주의
제1장 주체사상
제2장 주체사상의 하위 담론
제3장 강성대국건설과 선군사상
제4장 김일성-김정일주의와 김정일애국주의
제3편 권력승계 정치과정과 김정은 체제 구축
제1장 후계체제 구축과정
제2장 김정은 체제 구축을 위한 정치사회화
제3장 김정은 유일영도체계
제4편 계획경제와 시장화
제1장 계획경제와 김정일시대 경제정책
제2장 북한경제에서 시장의 발달
제3장 김정은 체제에서 경제문제와 시장화
제5편 핵정책과 핵무력
제1장 대외정책과 핵외교
제2장 새로운 핵개발과 해결방식의 전환
제3장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6자회담
제4장 김정은 시대의 핵문제
김창희(金昶熙)
전북대학교 법정대학 정치외교학과
전북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석사, 박사)
미국 Missouri 대학교 객원교수
한국정치정보학회장
한국정치학회․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한국동북아학회․북한연구학회 부회장
호남정치학회․호남국제정치학회 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언론중재위원
전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장
전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전북대학교 행정대학원장 역임
현)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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