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밥벌이 삼는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더구나 형벌을 다루는 일은 조선의 대학자 정약용의 경구처럼 삼가고 삼갈 일이다. 다행히 나는 우리 공동체가 독재를 타파하고 민주화의 진전을 이룬 뒤에 검사가 되었다. 일상화된 불법체포와 고문, 무자비한 과잉형벌은 지난 시기의 악몽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그러나 여전히 형벌은 그 자체로 사람들을 움츠리게 한다. 형벌은 이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주홍글씨를 새기고, 그들의 가정과 사회적 삶을 붕괴시킬 수 있다. 따라서 형벌법규는 공동체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질서인 경우에만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법실무가로서 검사는 법조문과 판례에 기대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형사사건을 처리하는 데 숙달되어야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형벌법규의 수범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대하여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비현실적 기준을 요구하는 행정형벌법규, 구성요건이 고시에 위임되어 그 존재여부를 알기 어려운 형벌법규, 높은 하한 형으로 범죄의 유형과 죄질이 다양함에도 구체적 타당성을 기하기 어려운 특별형법, 경미한 사안이더라도 특수절도죄와 같이 징역형만이 있고 벌금형이 선택형으로 없는 형벌법규, 보호법익을 확보한다는 취지에서 법문언을 넓게 후견적으로 해석하여 처벌범위를 넓히는 판례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그 예이다.
2011년 9월에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2년 5개월간 파견 근무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형벌법규의 위헌성을 주로 담당하는 부서에서 헌법소원, 위헌소원, 위헌법률심판 사건의 연구보고서 작성과 토론에 참여하였다. 형사법의 실무에서 제기되었던 형벌법규의 문제점에 대하여 헌법의 가치와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었고, 직접 담당하거나 관여한 사건에서 한정위헌 결정,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런 경험이 계기가 되어 박사학위논문으로 ‘형벌법규에 대한 위헌심사기준’을 주제로 삼았고, 이번에 책으로 출간하게 된 것이다. 글을 쓰면서 늘 고민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을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과장하고 있는 것 아닌지, 즉 가치가 있는 글을 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나는 이 책이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해본다.
첫째, 1987년 헌법재판소 탄생 이후 2014년까지 27년간 헌법재판소 판례집에 실린 형벌법규에 관한 본안결정 454건을 전수 조사하였고, 헌법재판소에서 형벌법규와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는 위헌심사기준을 빠짐없이 유형화하여 분석하였다. 이처럼 이 책은 헌법재판소의 형벌법규에 대한 위헌심사기준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로서 학계 뿐 아니라 헌법재판과 관련된 실무에서 실용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2015년 이후 성매매죄에 관한 합헌결정 외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 결정이 보이지 않아 대상이 된 기간 이후의 결정을 본격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일정한 기간을 두고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
둘째,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기준에 관한 일반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형벌법규의 이론적, 역사적 특성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보았다. 이론적 특성의 측면에서 다른 기본권제한법규에 대한 위헌심사기준과 비교하여 의미있는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지 개별 위헌심사기준마다 검토하였다. 그 과정에서 형벌법규와 민사․행정법규 등 다른 법영역에서 각자 만들어지고 발전되어 온 법원칙이 현대 헌법국가에서 인간의 존엄성보장을 중심으로 인간사회의 기본적 질서를 정립한 헌법질서라는 용광로에 흘러 들어가 헌법의 일반원칙으로 탈바꿈하게 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예를 들어, 형벌에 관한 책임원칙과 민사․행정법규에 적용되는 자기책임원리는 헌법적 근거와 기본원리를 같이 하는 것이다. 이처럼 헌법의 일반원칙을 통해 수렴되면서도 형벌법규의 특성이 반영된 위헌심사기준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이는 헌법의 가치를 형벌법규의 해석에 반영해야 한다는 ‘헌법적 형법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더불어 일제와 개발독재의 잔재로서 특별형법에 압도된 형벌법규, 사회윤리적 색채가 강한 형벌법규, 행정목적의 실현을 최우선시하는 광범위한 포괄위임과 행정형벌이라는 우리 형벌법규의 부정적 특성을 헌법재판소가 분명히 인식하고, 위헌심사기준의 강화를 통하여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셋째, 위헌심사기준은 헌법의 규범적 해석에 기반한 것이다. 따라서 위헌심사기준의 정립과 변경은 법적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이 확보되면서도 선례의 명백한 불합리성과 헌법현실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야 비로소 ‘法의 지배’ 원칙이 확립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위헌심사기준의 적용에서 비일관성의 문제를 현출하고 있고, 논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헌법재판관의 주관적 결단의 문제(‘人의 지배’)로 비춰질 수 있음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물론 이 책이 내가 의도한대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었는지 여부의 판단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이 책의 첫 번째 독자는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관, 헌법연구관과 헌법연구원이 될 것이다.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였던 쟁점들에 대한 내 나름의 정리된 의견을 제시한 것이므로 연구업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두 번째 독자는 헌법학과 형법학의 학자가 될 것이다. 헌법학과 형법학의 의사소통을 통하여 상호 이론적 논의를 풍부하게 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형벌법규를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판사와 검사, 헌법재판 관련 법률문서작성이나 변론을 준비하는 변호사, 이론과 실무의 결합으로서 생동감 있는 헌법학을 공부하기를 희망하는 로스쿨의 학생들이 독자가 되었으면 한다.
제 1 장 서 론
제 2 장 형벌법규에 대한 위헌심사의 의미와 특성
제1절 서 설
제2절 형벌법규와 위헌심사에 관한 헌법규정
제3절 국가형벌권의 법치국가적 한계로서 위헌심사
제4절 형벌법규에 대한 위헌심사의 특성
제 3 장 형벌법규의 구체적 위헌심사기준 분석
제1절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 형벌에 관한 책임원칙
제2절 헌법 제11조 제1항:평등원칙
제3절 헌법 제12조 제1항 후단, 제13조 제1항:죄형법정주의 원칙
제4절 절차관련 규정의 형벌법규에 대한 위헌심사기준 여부
제5절 헌법 제37조 제2항:과잉금지원칙 및 본질적 내용의 침해 금지
제6절 피해자의 기본권을 중심으로 한 형벌법규의 위헌심사기준
제 4 장 보안처분법규에 대한 위헌심사기준
제1절 의미 및 헌법재판소 결정례
제2절 형벌법규에 대한 위헌심사기준의 적용여부
제 5 장 형벌법규의 특성에 부합하는 위헌심사기준의 정립
제1절 형벌법규에 대한 위헌심사기준과 그 특성
제2절 형벌법규에 대한 위헌심사기준의 새로운 정립과제
제 6 장 결 론
오영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성균관대학교 법학박사(헌법전공)
사법시험(38회) 합격 후 1999년부터 검사로 재직 중
영국 캠브리지대학교 방문학자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파견)
춘천지검 영월지청장
법무부 국가송무과장(헌법재판업무 담당)
현) 수원지방검찰청 안양지청 부장검사
(e-mail: youngshin-oh@naver.com)
상품문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