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법에 관한 두 주제를 다루고 있다. ‘법은 강자 편인가?’, 그리고 ‘법은 확정적인가?’ 이 두 주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의 향방 및 그 원인에 대한 결정적 단서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 둘은 서로 연결된 하나의 주제다.
법률가든 일반 시민이든 이 주제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은 품고 있을 것이다. 법은 강자 편인가라는 주제는 특히 재판과 관련하여 자주 논란된다. 또한, 법은 확정적인가라는 주제는 이 표현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실제 재판이나 판사의 발언을 둘러싸고 종종 시비거리가 됨을 볼 수 있다.
다만 일반적 관심에 비하면, 이 주제에 관한 특히 우리나라 이론가들의 논의는 퍽 빈곤해 보인다. 그러나 외국 이론가들은 꼭 그렇지 않다. 법은 강자 편인가라는 문제는 늘 법사회학의 관심사가 되어왔고, 법이 확정적이냐의 문제는 주요한 법철학적 논의 주제로 남아 있다. 우리의 경우, 법은 강자 편인가라는 주제는 이에 관한 일반 시민들의 확신(?)과는 별개로, 그 이론적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편 법은 확정적인가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이론적 접근을 접하기 어려운 것과는 달리, 내로라하는 법조인들의 입에서 너무 쉽게 즉흥적이고 일방적인 발언들이 튀어나오는 것에 여러 번 놀란 적이 있다.
이 책의 성격은 복합적이다. 책 제목에 나타난 주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되, 동시에 새로운 모습의 법학 입문서 역할도 할 수 있도록 법이론을 중심으로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법학도들이나 법에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을 주로 염두에 두었지만, 기성 법조인이나 법학자에게도 유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종래의 기준, 특히 그 형식적 측면에서 이 책을 학술서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문헌인용 출처를 밝히되, 학술문헌에서와 달리 포괄적으로 다룬 경우도 적지 않다. 개인적인 이야기 등, 학술 외의 이야기를 펼친 부분도 있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학술적 수준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서 상세히 다루고 여러 면에서 참조한 (법)사회학자 도날드 블랙Donald Black의 이론에 관해서는 그 정확한 이해를 위해 저자와의 이메일 교신을 통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학자들의 주요 성과나 판례를 소개, 정리한 부분이 많지만, 거기에 그치지는 않았다. 특히 비례의 원칙, 이익형량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 등, 저자 나름의 학술적 탐구의 소산을 이 책에 담았다.
부제에 ‘법철학․법사회학’ 산책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정법에 관한 구체적 사례를 드는 것은 불가피하고 또 필요하다. 형법 또는 민법․상법 등의 실례를 들기도 했으나, 헌법에 관한 사례들이 압도적이다. 저자의 전공분야가 헌법이기 때문이고, 또한 헌법 사례들이 법철학․법사회학 이야기에 적합한 측면도 없지 않다.
늘 법에 관한 자유로운 글을 쓰고 싶었다. 법이라고 하면 우선 딱딱한 느낌이 들게 마련이고, 법에 관한 글쓰기 역시 실무상으로는 물론, 학술논문이나 서적에서도 무미건조함이 미덕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실무상의 서식 등은 별개로 하고, 이것이 미덕인지는 의문이다. 때때로 무미건조함이 실체를 위장하는 변장술이 아닐까라는 의문도 든다. 그래서 틀에 매이지 않으려 한껏 다짐했지만, 펜을 놓고 다시 보니 별로 자유스럽지 않아 보인다. 타성일 것이다.
그렇기는 해도 고전이나 전문 학술문헌으로부터 종이신문, 인터넷자료, 시․소설, 영화 이야기 등에 이르기까지, 두루 가리지 않고 인용하거나 참고하는 등, 자유롭고자 시도하였다. 아울러, 주제에 직접 관련된 것에 좁게 한정하지 않고, 유익하다고 판단되는 한, 널리 연관된 사항들을 폭넓게 다루었다. 주제와 연관된다고 생각하면 아주 사사로운 얘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부제에 ‘산책’이란 수사를 붙인 것은 이 때문이다. 다만 산책길에 나서서 더러 외국 법이론의 난삽함에 골머리를 앓을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뿐만 아니다.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판결문을 길게 인용하고 때때로 세세히 따져보기도 했으므로 버겁다는 느낌을 받게 될지 모르겠다. 전반적으로, 주제에 적합한 문헌이나 사례들을 넓게 조금씩보다는 선택적으로 집중해 자세히 살펴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북한산 둘레길을 산책하노라면 때때로 불현듯 작은 들꽃을 꼼꼼히 살펴볼 때가 있고, 그런 산책길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집필 초기에는 저자의 기존 성과들을 쉽게 풀어쓰면 되겠거니 정도의 조금 가벼운 생각이었다. 이 책의 여러 부분은 저자가 이미 발표했던 서적이나 논문, 칼럼 등을 인용하거나 요약, 정리한 것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쉽게 생각한 것은 잠깐이었고, 이내 오산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썼던 것을 새로 생각하게 된 점들이 적지 않거니와, 새로운 의문들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또한, 전에 보지 않고 미루어왔던 문헌들을 새로 뒤지면서 지적 흥미가 더해감을 느꼈다. 과거 대학에 적을 두었을 때 맛보지 못했던 행복감에 젖을 때도 있었다.
법 공부를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 법에 관한 더 이상의 관심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긴 세월, 법과대학 입학부터 셈하면 50년 다되는 길동무였다. 심하게 불화하지도 않았지만 속깊이 사귄 사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본문에서도 그런 표현을 썼지만, 법학은 ‘허학’虛學이 아닌가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애초에 법학, 특히 헌법학 공부를 직업으로 택한 것은 그것을 현실 비판의 도구로 삼자는 속셈이었다. 이제는 그런 쓸모도 많이 줄어들었다.
01 법은 강자 편인가? - 몇 가지 사례
법이 누구 편인지 묻는 까닭
미국헌법은 부자를 위한 경제문서?
누가, 왜 이기는가?
휠체어에 앉은 강자들
미국헌법사의 ‘헌법혁명’
‘헌법 성좌星座의 붙박이 별’
‘명백·현존하는 위험’
우리 법원의 ‘진보적 법창조法創造’
강자 편인가, 약자 편인가?: ○○전자 사건
미국의 법, 한국의 법
02 법은 강자 편인가? - 이론적 설명
‘법의 행동’: 도날드 블랙
마르크시즘과 법
‘검은 법률’: 법의 패러독스
일본인 판사 입천立川: 3·1운동재판
법 앞에 평등은 법적 허구?
03 법은 확정적인가? - 무엇이 재판을 좌우하는가?
‘카디’재판: 막스 베버
법현실주의
‘위대한 반대자’: 홈즈
홈즈 여담: 전설의 연애편지와 법사상 논쟁
판사의 법창조
‘사건 사회학’: 사회구조와 소송
04 법은 확정적인가? - 어려운 사건, 정답은 있는가?
시험 낭패의 추억
법해석의 불확정성: 성전환자 사건
헌법해석의 특수성
‘법의 개방적 구조’: 하트
‘정답은 있다’: 드워킨
비판법학운동
법은 이익형량利益衡量이다
‘정의正義의 경제학’
법경제학과 그 한계
무엇에 관한 평등인가?
법의 불확정성
05 에필로그
어떻게 할 것인가?
불평등과 갈등
법학은 학문인가?
법학을 넘어서
법적 결정의 자세
註
양 건(梁 建)
1947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텍사스(오스틴)대학에서 비교법석사 학위를 받음.
육군사관학교, 숭전대(현 숭실대), 한양대에서 법학교수를 지냈고,
한국공법학회 회장, ‘법과 사회’이론연구회 회장을 역임함.
초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제22대 감사원장을 지냈음.
주요 저서로,《憲法硏究》(법문사, 1995),《憲法講義》(법문사, 2009-2014),
《法社會學》(민음사, 1986. 아르케, 2000),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백산서당, 200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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