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책을 주로 읽을 사람은 아마도 사법연수생이나 로스쿨생 아니면 초보 판사나 변호사일 것이다. 필자는 명색 이십여 년을 법률업무에 종사해 왔다. 판사로서, 변호사로서, 교수로서 주로 민사법을 다뤘으나 학문으로서 민사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것은 아니므로 얄팍한 법지식을 어디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됨은 물론이다. 그래서 이 책을 쓸까말까 많이 망설였다. 평소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책을 내는 것은 공염불을 넘어서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 아닐까 싶은 생각에 몹시 두렵다.
길지 않은 필자의 법조생활을 되돌아 보건대 민사법은 정말 난해하면서도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그 폭은 산과 대지처럼 크고 넓으며, 이론의 깊이는 해연(海淵)처럼 깊고 아득하다. 그러니 처음부터 겁먹고 달려들기 어려우며, 막상 달라붙는다고 해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가 되기 십상이다. 목표를 멀리 두고 즐겁게 공부하지 않으면 그림자조차도 붙잡기 어려운 대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름 경력자라는 사람이 이럴진대 초보 법률가들의 두려움은 어떻겠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한 이들의 마음을 헤아려 필자의 시행착오를 후배들에게 일깨워 주어 그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려는 마음에서 망설인 끝에 이 책을 내게 되었다. 이 책에는 필자가 초보 법률가로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은 작은 성과들이 들어 있다.
2. 필자는 근래 법, 특히 민사실체법과 민사절차법을 아우르는 민사법의 기본적 얼개와 구조에 관심을 두어 이를 분석하고 해명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투자하였다. 거기서 얻어낸 것이 바로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이다. 그로부터, 법과 도덕의 경계점, 개개 법규의 성질과 역할, 법률요건과 법률효과, 실체법과 절차법의 상호관계, 소송의 기본구조, 청구와 변론, 특히 청구원인과 공격방어방법의 관계에 대하여 제법 의미 있는 성과를 얻었고 작은 희열과 보람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실체법과 절차법이―형사법이나 다른 법체계도 마찬가지겠지만, 매우 치밀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양자가 유기적 생명체의 세포조직처럼 종횡으로 정교하게 구조 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구조분석을 통해서 민사법에 접근하는 것이 민사법을 빠르고 쉽게 이해하고, 실체법과 절차법, 민법과 민사소송법의 상호관계를 일관되고 정연한 논리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을 <민사법과 민사소송의 구조>로 붙인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필자는 이 책에서 법률요건과 법률효과, 청구와 공격방어방법에 대해서 나름대로 심도 있는 해설을 하였다. 이는 요컨대, 법률요건과 법률효과는 실체법의 기둥이고 청구와 공격방어방법은 소송법의 대들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실체법상의 법률요건으로부터 법률효과인 권리․의무가 발생하고, 그것이 소송상 청구의 내용이 되어 심판의 대상이 되며, 공격방어방법은 심판의 소송자료가 되는 것이므로, 결국 이 양자가 민사법의 우주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종래 우리는 여기에 그다지 큰 관심을 갖지 못하였고, 그것이 법학도나 초보 법률가들이 민사법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들을 중심으로 한 구조분석을 통해서 민사법과 민사소송의 체계를 이해할 수 있고, 나아가 소송물(소송목적)의 구조, 소송물의 특정, 소와 청구의 변경, 중복소송, 변론의 대상과 방법, 주장․입증책임의 분배, 소 취하 후 재소(再訴)의 금지, 상소에 따른 이심(移審)의 대상과 상소심의 심판 범위, 기판력과 집행력의 범위와 효과 등 민사법의 여러 문제들을 관통하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 책은 민법이나 상법 등 민사실체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해설하는 것은 아니고 민사소송법과 민사집행법 등 절차법의 모든 내용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앞서 말한 민사법의 기둥과 대들보를 중심으로 민사실체법과 소송법의 기본구조를 해명하고, 이를 토대로 소의 제기와 소송목적의 특정, 주장과 입증을 통한 변론, 소의 변경 등 민사소송절차의 큰 흐름을 설명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으며, 소송의 종료와 상소에 관한 부분은 생략하였다. 물론 그 부분도 중요하기는 하지만, 시간과 지면의 제약으로 다음을 기약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에 없는 내용은 교과서나 주석서, 요건사실론 등의 여러 책을 통해 공부하여야 한다. 법학도나 초보 법률가들은 자신의 견해를 세우기에 앞서 선배들이 쌓아 온 지식을 빠른 시간 내에 흡수, 체득(體得)하는 것이 급선무다. 징검다리 없이 물을 건널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사법시험에 합격하였거나 로스쿨 2학년 정도의 공부를 마친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민사법에 대해서 어느 정도 기초지식을 갖고서 이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고, 이를 통해 민사실체법과 민사소송법이 하나로 연결되는 감동적인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민사법을 처음 공부하는 초심자라도 큰 무리는 없겠지만, 그럴 경우 이 책의 제1편과 제2편만을 읽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3. 필자는 이 책에 잔소리나 다름없는 내용을 좀 넣었다. 제1편의 첫머리에 있는 <법과 법조인>, 제2편 제1장의 <민사법 학습론>이 그것이다. 이 책을 읽는 여러분은 모두 공부에는 나름 도를 터득한 사람들이겠지만, 시간과 노력을 많이 투입하였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오솔길 하나를 귀띔해 주려는 마음에서 마련한 것이다.
무릇 공부에는 왕도(王道)가 없다고 하지만 필자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공부할 때 편안함을 느끼고 그러면서도 그 결과가 좋은 길이 있다면 그것이 곧 공부의 왕도가 아닐까? 현대사회는 너무나 복잡하고 할 일이 많으며 공부만으로 인생이 행복해 지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공부가 인생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불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고, 그러자면 공부에도 요령이 필요함은 자명한 이치다. 그런데 그 요령이란 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하는 것이 아니므로 각자에게 맞는 요령이 따로 있으며, 공부의 왕도도 각자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학습론에 관한 필자의 말도 하나의 의견에 불과하므로 심심풀이 삼아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제2편 제2장에는 그 동안 필자가 쓴 개별 논문과 학습자료를 <민사법이론>으로 묶었다. 가등기담보와 비전형담보, 계속적 보증채무의 확정, 기판력이론, 법인 등 대표자의 대표권 제한, 청구이의와 제3자이의만을 추렸는데, 보잘 것 없는 내용이지만 여러분의 실체법 실력과 절차법 실력을 올려주어 사법연수원 시험이나 변호사시험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또, 여러분이 공부한 결과를 그런 방식으로 살을 보태 정리하고 보존하여 여러분의 법조생활에 평생 유용한 도구로 이용할 것을 권하는 마음도 있다. 더 많은 자료가 있지만 지면 제약과 두려움으로 다 풀어놓지는 못했다.
4. 이 책의 제3편은 실체법과 소송법 지식을 소송문서에 활용하는 요령에 관한 것이다. 제1장과 제2장에서는 변호사와 판사가 소송문서를 작성하는 요령을 설명하고, 제3장에서는 소장과 판결서 작성의 실례를 제시한 후 모범답안과 잘못된 답안에 대한 첨삭지도를 하였다. 제1편과 2편에서 공부한 것을 시험해 보도록 함으로써 시험을 앞둔 사법연수생과 로스쿨생 및 초보 법률가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마련하였다. 제3장의 첨삭지도는 사법연수원 내 시험이나 사법시험, 변호사시험의 답안지에서 발견되는 수험생들의 실수 위주로 설명하였다. 아무리 법지식이 풍부해도 이를 답안지나 소송문서라는 구슬로 꿰어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잘 쓰인 소장이나 판결문은 멋진 시나 수필만큼이나 읽는 사람은 물론 쓰는 사람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근래 로클럭시험이나 변호사시험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소송문서 등의 작성을 요구하고 그 난이도도 매우 높아가고 있어 수험생들과 초보 법률가들에게 많은 부담을 주고 있다. 결국 폭넓은 공부와 연습만이 해결방안이다. 이 책에서 소장과 판결문 외에 의견서나 검토보고서, 사법시험이나 변호사시험의 사례형 문제도 다루고 사례도 더 담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나 시간과 지면 사정으로 인해 다음으로 미루었다.
제1편 민사법의 체계와 민사소송의 구조
제1장 민사법의 본질과 체계
제2장 민사소송의 구조
제2편 민사법 학습론과 민사법이론
제1장 민사법 학습론
제2장 민사법이론
제3편 소송문서의 작성
제1장 변호사의 소송문서
제2장 판사의 소송문서
제3장 소송문서 작성 연습
양경승
성균관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제29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제31회 사법시험 합격
환경부 사무관
서울민사지방법원 등 각급 법원 판사
변호사, 사법시험 및 변호사시험위원
현 사법연수원 교수(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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