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 초반에 발발했던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공포와 분노를 안겨줬지만, 인류는 그 속에서 미래의 희망을 발견해야 했다. 공포는 인류에게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했고, 희망은 인류에게 어제와는 다른 내일의 청사진을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20세기는 미래의 청사진을 각축하는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되었고, 동시에 역설적으로 공포와 분노의 청산을 위해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선언했던 시대였다.
  20세기를 풍미했던 수많은 이데올로기들은 대부분 태평양 건너 저 편에서 동양의 세계관과 무관하게 명멸했지만, 20세기의 동양은 서양이 설정한 보편적 표준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게다가 서구의 물리적 위력이 동양의 정신세계를 압도했을 때, 동양이 손쉽게 찾았던 대안은 서양의 세계관을 해면(海綿)처럼 흡수하는 서구에 대한 열망이었다. 그러나 서구의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낙관적 열망이 기대와는 달리 실망과 좌절로 변했을 때, 대부분의 동양 지식인들은 과거에 대한 반성적 성찰보다는 또 다른 서구의 대안을 찾아 방황했다. 20세기의 동양 사회가 서구 이데올로기의 실험장이 되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의 대안을 찾아 서구 지성사의 지도를 순례했던 것은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한국의 지식인들은 무용하다고 판명된 과거의 대안을 버리고 미지의 가능성을 향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데 기민했다. 그러나 냉전과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의 한국 현대사는 대안의 이데올로기를 모색하려는 다양한 실험적 논의들마저도 냉전의 이분법적 논리로 양분시켰다. 한국 사회의 진로를 밝혀줄 것으로 믿어졌던 서구의 이데올로기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흔적도 없이 폐기처분되고, 대신에 또 다른 대안이 쉴 새 없이 모색되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자신의 준거점을 상실한 한국정치, 그리고 좌/우 또는 보수/진보로 분열된 한국정치는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이 책은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 사회에 수용되었던 서구 정치사상의 여러 편린들을 다채로운 무늬를 가진 조각보처럼 재구성하여 현대 한국정치의 이념적 좌표를 제시하려는 목적에서 기획되었다. 이 책에는 20세기를 풍미한 서구의 이데올로기들 중에서 현재까지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13개의 주제들이 한국적 수용의 관점에서 분석되어 있다.
  1장에서 4장까지는 사회진화론, 자유주의, 공동체주의, 공화주의 등과 같은 서구 정치사상의 고전적인 주제들을 이론적 분석하고, 각각의 주제들이 수용된 한국적 맥락과 문제의식을 검토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토론의 자료를 제공하고자 했다. 5장에서 8장까지는 마르크스주의, 무정부주의, 시민사회론, 헤게모니론 등과 같은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 대안들을 소개하고, 각각의 주제들에 대한 한국적 수용의 맥락을 검토함으로써, 한국의 미래지향적 국가-사회관계 정립에 필요한 성찰의 기초를 제시하고자 했다. 9장에서 13장까지는 다문화주의, 페미니즘, 포퓰리즘, 포스트모더니즘, 생명정치론 등 비교적 최근의 정치사상 연구에서 제기되는 쟁점들을 소개하고, 각각의 쟁점들에 대한 한국적 논의의 맥락을 점검함으로써, 현대 한국정치사상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하고자 했다. 

CHAPTER 01 19세기 후반 한중일 3국의 사회진화론 수용
CHAPTER 02 자유주의
CHAPTER 03 공동체주의와 한국사회
CHAPTER 04 공화주의의 한국적 변용: 왜 그리고 어떤 공화주의인가?
CHAPTER 05 범지구적 자본주의체제에서의 맑스주의
CHAPTER 06 아나키즘: 일제하 아나키즘의 수용과 ‘무정부주의’
CHAPTER 07 현대사회와 시민: 왜 시민사회인가?
CHAPTER 08 헤게모니론: 쟁점, 문제점, 그리고 한국화
CHAPTER 09 한국에서 다문화주의 논의의 전개와 수용
CHAPTER 10 페미니즘
CHAPTER 11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CHAPTER 12 탈근대주의(Postmodernism)의 한국적 수용
CHAPTER 13 생명정치론 

최연식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연세대학교 정치학 박사

홍태영
국방대학교 국제관계학부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정치학 박사

유홍림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미국 Rutgers 대학교 정치학 박사

곽준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미국 University of Chicago 정치학 박사

조현수
국민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독일 Univ. Marburg 정치학 박사

전상숙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이화여자대학교 정치학 박사

이동수
경희대학교 NGO대학원
미국 Vanderbilt University 정치학 박사

김종법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정치연구소
이탈리아 Università degli Studi di Torino 정치학 박사

김남국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미국 University of Chicago 정치학 박사

최정원
연세대학교 동서문제연구원
연세대학교 정치학 박사

서병훈
숭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미국 Rice University 정치학 박사

홍원표
한국외국어대학교 자유전공학부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학 박사

최민자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영국 University of Kent at Canterbury 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