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을 왜 다시 이해해야 하는가?
2026년도 정부예산은 약 728조 원이다. 이에 비해 2025년도 331개 중앙 공공기관의 총수입·총지출 규모는 약 947조 원에 이른다. 두 수치에는 정부의 출자·출연·보조와 위탁사업비 등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공공기관의 재정 규모와 활동 범위는 오늘날 국가의 경제적·사회적 역할이 정부부처만이 아니라 다양한 공공기관을 통해 수행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전력과 가스, 철도와 공항, 주택과 수자원, 정책금융과 보증, 연금과 사회보험, 고용과 복지, 연구개발과 문화, 안전과 환경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일상은 수많은 공공기관과 연결되어 있다. 공공기관은 정부정책을 보조하는 주변적인 산하기관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과 공공서비스를 국민생활의 현장에서 구현하는 중요한 실행조직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은 그 규모와 역할에 비해 충분히 이해되지 못해 왔다. 때로는 정부의 하부기관처럼 취급되고, 때로는 민간기업과 같은 효율성과 수익성의 기준으로만 평가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조조정과 기능조정, 정상화와 혁신, 재무건전화가 추진되었지만, 공공기관이 왜 존재하는지, 국가는 왜 특정 기관과 기업을 소유하는지, 공공기관은 어떠한 원리에 따라 움직이며 누구에게 책임져야 하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공공기관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필요성이 줄어든 기능은 조정해야 하고, 민간이나 다른 주체가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다른 정책수단을 검토해야 한다. 동시에 공공기관의 비용과 부채만을 보고 그 존재 이유와 공공적 성과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국가가 왜 그 기관을 소유하는지, 어떠한 공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권한과 자원을 부여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정부와 기관이 어떻게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일이다.
공공기관은 하나의 원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법과 제도는 기관의 임무와 권한의 범위를 정하고, 경영은 인력과 예산, 자산과 정보를 실제 사업과 서비스로 전환한다. 성과는 그 활동이 국민생활과 국가경제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준다. 책임은 그 성과와 실패의 원인을 설명하고 평가하며, 교정과 학습이 다시 제도와 경영의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를 ‘제도·경영·성과와 책임의 원리’라고 붙였다. 네 요소는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제도가 잘못 설계되면 경영의 노력만으로 좋은 성과를 만들기 어렵고, 경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좋은 제도도 형식에 머문다. 성과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면 책임을 정확하게 물을 수 없으며, 책임이 교정과 학습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같은 실패가 반복된다.
이 책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관점은 공공성·기업성·책임성의 균형이다. 공공성은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이고, 기업성은 공공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운영의 기반이며, 책임성은 이 두 가치를 국민의 관점에서 연결한다. 공공성을 이유로 비효율과 부실경영을 정당화할 수 없고, 효율성을 이유로 보편성과 형평성, 안전과 장기투자 같은 공적 임무를 포기할 수도 없다.
특히 공공기관의 자율성과 책임은 서로 반대되는 가치가 아니다. 실질적인 권한을 주지 않은 채 결과만 책임지게 하면 책임경영이 아니라 책임전가가 되기 쉽다. 반대로 권한만 주고 이사회와 감사, 공시와 평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방만경영과 위험이 커질 수 있다. 공공기관에 필요한 것은 통제 없는 자율성도, 자율성 없는 통제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권한과 책임이 함께 움직이는 책임 있는 자율성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오랜 연구와 정책 현장에서 형성되었다.
저자가 공공기관을 본격적으로 접한 것은 2002년 부패방지위원회에서 정부투자기관의 윤리경영 업무를 담당하면서부터였다. 이후 한국조세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의 창립 과정에 참여하여 경영평가와 성과관리, 임금체계와 윤리경영, 국가소유와 지배구조를 연구하였다.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정부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제도가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평가와 통제가 어떠한 성과와 한계를 만들어 내는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국무조정실 평가관리관으로 정부업무평가와 국정과제의 조정·평가를 담당한 경험은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했다. 공공기관의 성과는 기관 내부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책을 설계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정부,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이사회와 경영진, 현장에서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과 구성원, 이를 감독하고 평가하는 여러 주체 사이의 권한과 책임이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
국제적인 논의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을 확장시켰다. OECD 공기업 관련 회의와 영국·프랑스 등 주요국의 국가소유 정책을 살펴보면서, 공공기관을 단순한 행정통제의 대상으로 관리하는 것과 국가가 전문적인 소유자로서 장기적인 전략과 책임을 가지고 관리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공공기관 개혁은 평가제도나 관리기법을 부분적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소유와 정책결정, 이사회와 경영, 국민에 대한 책임을 연결하는 거버넌스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2026년 공공기관 관리체계를 둘러싼 제도 변화도 이러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부처가 더 많은 권한을 갖느냐가 아니다. 국가가 왜 특정 공공기관을 소유하는지 명확히 하고, 정부의 정책책임과 공공기관의 경영책임을 구분하며, 이사회와 기관장에게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고 그 결과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도록 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새로운 제도 역시 통제를 더 세밀하게 만드는 방향보다 전문적인 국가소유와 책임 있는 자율성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 책은 공공기관 임직원과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대학과 대학원의 학생, 연구자와 평가전문가, 그리고 공공기관이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알고자 하는 독자를 염두에 두었다. 전통적인 행정학 교재나 경영학 교과서 어느 한쪽에 머물기보다는 국가소유와 법제도, 지배구조와 경영평가, 재무와 인사, 시장과 경쟁, 감사와 윤리, 안전과 ESG, 디지털 전환과 국제비교를 하나의 구조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전문교양서를 지향하였다.
각 장에서도 제도를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그러한 제도가 만들어졌는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떠한 성과와 책임의 문제를 만들어 내는지, 앞으로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함께 살펴보려 하였다.
앞으로 공공기관의 역할은 더 단순해지지 않을 것이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전환, 저출생·고령화와 지역소멸, 공급망 불안과 산업전환,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확산은 새로운 공공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민간기업의 경쟁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고, 정부가 직접 모든 것을 수행할 수도 없다. 정부와 공공기관, 민간기업과 시민사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자의 전문성과 역량을 연결하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공공기관 개혁의 핵심은 기관을 일률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데 있지 않다. 국민에게 필요한 기능을 누가 가장 효과적이고 책임 있게 수행할 것인지 묻는 데 있다. 공공기관이 직접 해야 할 일, 민간과 함께해야 할 일, 지방정부와 지역사회가 더 잘할 수 있는 일, 더 이상 공공기관이 수행할 필요가 없는 일을 구분하고 그에 맞게 국가소유와 공공서비스 공급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
이 책이 공공기관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고, 공공기관이 왜 존재하며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전문적이고 혁신적이며 자율적이면서도 책임 있는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공공기관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지 않다. 국가가 어떠한 목적과 원칙으로 공공기관을 소유하고, 정부와 기관이 어떠한 권한과 책임을 나누며, 공공기관이 국민과 사회의 요구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공공기관은 대한민국의 성장과 위기극복을 떠받쳐 온 중요한 기반이었다. 이제는 성숙경제의 구조적 한계를 넘어 새로운 성장과 포용, 안전과 지속가능성으로 나아가는 ‘미래전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제1부 공공기관을 이해하는 기초
제1장 공공기관을 왜 공부하는가
제2장 공공기관의 개념과 유형
제3장 한국 공공기관 제도의 역사적 발전
제4장 공공기관 이론의 기초와 현대적 확장
제2부 공공기관의 법제, 소유권과 지배구조
제5장 공공기관운영법과 제도적 관리체계
제6장 국가소유와 소유권 정책
제7장 공공기관의 공적 통제와 외부책임성
제8장 이사회, 기관장, 감사와 내부지배구조
제3부 공공기관의 경영관리, 성과와 재무
제9장 공공기관 경영평가와 성과책임
제10장 성과관리와 공공가치
제11장 공공기관 재무관리와 공공투자관리
제12장 공공기관 예산관리와 총인건비 제도
제13장 조직 ․ 인사관리와 전략적 인적자본 관리
제14장 감사 ․ 내부통제와 위험기반 책임경영
제15장 윤리경영, 청렴과 반부패 거버넌스
제4부 시장, 경쟁과 공공서비스 공급체계
제16장 공기업과 시장규율
제17장 민영화, 구조조정과 기능조정
제18장 공정거래, 동반성장과 공급망 책임
제19장 준정부기관과 공공서비스 전달체계
제20장 지방공기업과 지역 공공서비스
제5부 책임성, 지속가능성과 공공기관의 미래
제21장 공공기관의 책임성
제22장 안전경영, ESG와 지속가능성
제23장 디지털 전환과 AI 시대의 공공기관
제24장 국제비교: 주요국 공기업 ․ 공공기관 관리
제25장 공공기관 개혁의 방향과 과제
제26장 결론: 공공기관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부록: 공공기관의 제도·지정·재무·인력·평가와 지배구조
행정학 박사. 현재 건국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공공기관 정책과 리더십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에서 초빙연구위원·팀장·부소장·소장을 역임하며 공공기관의 소유권과 지배구조, 경영평가, 성과관리와 책임경영을 연구했다. 국무조정실 평가관리관으로 국정과제의 조정·평가와 정부업무평가에 참여했으며, 부패방지위원회와 국가청렴위원회에서는 민관협력, 윤리경영, 투명사회협약을 담당했다. 정부혁신 민관협의회 위원과 공공기관 경영평가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25년 국정기획위원회 기획분과 전문위원으로 정부조직 개편, 공공기관 개혁, 규제개혁, 정부출연연구기관의 PBS 제도 개편과 국정과제 수립 등에 참여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공공기관의 소유권과 지배구조, 경영평가와 성과관리, 책임경영, 정부개혁과 반부패이다. 이 책은 이러한 연구와 정책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공공성과 효율성, 자율성과 통제, 성과와 책임이 교차하는 공공기관의 작동 원리를 풀어낸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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