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바로 그와 같은 형법의 타락을 경계하고 의료분쟁에서 형법이 지켜야 할 법치국가적 한계의 선을 긋고자 한다. 의료영역에서 형법의 절제는 의료사고를 둘러싼 의사와 환자 또는 보호자 사이의 관계를 투쟁적 ․ 전략적인 관계보다는 대화적인 관계로 나아가도록 유도할 것이다. 왜냐하면 환자나 보호자들은 형법이란 결코 자신들의 이익을 당파적으로 관철해 주는 무기가 아님을 깨닫을 때 비로소 좀더 평화롭고 유연한 타협의 길로 접어들 동기를 갖게 될 것이며, 의사들도 형법이 결코 무모하게 휘두르는 권력의 칼이 아님을 믿을 수 있을때 비로소 대화로 향한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획을 추구하는 의료형법은 자신부터 먼저 대화의 논리로 무장되어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실체적인 진리에 대한 확신과 정의에 대한 신념으로 넘치는 형법은 진실 자체가 흐릿해지고 책임의 소재가 모호한 의료영역에 대해서도 과도한 역할의식에 빠져들기 쉽고, 또한 그렇게 될 경우 형법은 대화를 유도하는 통로가 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통로를 막고, 분쟁당사자들을 투쟁의 장으로 내몰게 되기 십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이 책은 이미 내가 여러 분야에서 전개한 바 있는 ‘대화이론’의 전망 아래서 의료형법학이라는 새로운 황무지를 일구고자 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이 책은 대화이론을 구체화하는 응용연구의 결과물이면서 동시에 의료형법이라는 전문법영역을 성장시키는 연구서라고 볼 수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이 책은 법과대학과 의과대학의 학생 그리고 특히 실무 법조인과 사법연수원생들이 이 책의 독자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한다. 

이상돈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졸업
독일 Frankfrut대학교 대학원
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부교수